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저 리츠 사랑해요... 외톨이 리츠... 가엾은 리츠... 사랑스러운 외톨이...
마오랑 친해지기 전 이야기입니다. 얼굴은 트고 통성명도 했지만 아직 친구와 아는 아이의 중간쯤...
짧습니다... 길게 못 쓰겠다 THE 날조맨
리츠마오인가? 리츠+마오일지도
비가 올 때면 혼자가 됐다. 매일같이 찾아오던 태양도 그날만은 비구름 뒤에 숨었는지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낮이어도 이런 날이면 일찍부터 움직일 수 있었다.
아직 덜 지워진 잠을 눈을 비벼 떨쳐내고 늘어지는 걸음을 추슬러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돌려 무거운 문을 열자 다른 방에 비해 약간 쌀쌀한, 악기와 악보로 가득한 방이 보였다.
한숨을 뱉으며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느린 동작으로 피아노를 열고 건반 위에 놓인 붉은 천을 접어 옆에 두었다. 가늘고 긴 흰 손가락이 건반을 천천히 누르며 소리를 냈다. 잠시 손을 떼었다 악보를 꺼내 펼치고 그에 맞추어 손가락을 놀렸다.
복도에선 요란하게 들리던 빗소리도 이 방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지금은 리츠가 온전히 이 방의 지배자였다. 건반을 한 번에 여러 개 내리치면 천둥보다도 큰 소리가 방을 덮었다. 마치 지휘자라도 된 것처럼, 모든 것이 리츠의 말을 들었다.
사실 비가 오는 것도, 어두워지는 것도, 천둥이 치는 것도 리츠에게는 전혀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어둠과 고요, 밤의 소란과 그 안에 숨은 것들은 그에게 손끝도 댈 수 없었다. 리츠가 눈썹 하나라도 일그러뜨리면 그것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심연 속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었다. 리츠는 그걸 알았고, 그러니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밤에 숨은 것들은 리츠가 혼자 있을 때면 늘 속살거렸다. 작은 도련님, 또 혼자 있네요.손이 흠칫 멈췄지만 들리지 않도록 오히려 더 건반을 세게 내리쳤다. 페달을 밟으면 되겠지만 지금 리츠는 의자에 앉으면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작은 도련님을 한동안 찾아오던 그 작은 아이도 더는 오지 않네요.키득키득, 피아노를 좀먹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결국 리츠는 손을 멈췄다.
그러니 포기하세요.적막이 흐르자 목소리는 힘을 얻었는지 점점 늘어나고 점점 커졌다.
리츠는 어둠도 잠도 거기서 나오는 고요 혹은 소란을 결코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추위는 싫어했다. 혼자가 되는 것은 무서웠다. 그러면 항상 저 소리들이 리츠를 타고 올랐다. 아무도 작은 도련님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큰 도련님이 떠나갔잖아요. 누군가 도련님을 선택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착각이에요.손가락이 아무렇게나 건반을 내리쳤다. 이제 음악이 아닌 소리가 방에 쫙쫙 끼얹어졌다.
태양이라니,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잖아요.비웃는 소리였다. 어려서는 웃음소리를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목소리들이 자신을 긍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리츠는 웃음소리에서 조소를 가장 먼저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재가 되지는 않을 테니 차라리 다행이지 뭐예요.
이번엔 주먹을 쥐고 피아노를 내리쳤다. 어린 손가락 아래 부러진 건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악보를 내팽개치고 제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귀를 막았다. 그런데도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들린다고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여운 리츠, 불쌍한 리츠.
형에게 버려진 아이. 아무도 선택해주지 않아서 결국은 별처럼 얼어붙어 버리겠지. 그러다 결국은 밤하늘에만 못 박힌 채 불타오를 거야. 저주를 듣고 있었다. 이 저택엔 어린 흡혈귀와 그를 호시탐탐 노리는 저주들이 살았다. 한 번도 리츠는 그것을 씹어 죽일 수 없었다.
무슨 소리가 났다. 현관이었다. 저주는 아쉬운 소리를 내더니 잦아들었다. 리츠는 그 후로도 한참 귀를 막고 있다가 문을 슬쩍 열고 현관으로 내려갔다. 전화벨 소리였다.
발판을 가져와 발돋움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쿠마입니다… 어른의 목소리였다. 자기 어머니 정도의 목소리가 인사도 없이 용건부터 전화선을 타고 흐르게 했다. 거기 마오 있니?
그러고 보니 자주 찾아오던 그 애의 이름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니 너머에서 그녀가 전부 이야기했다. 오늘 아침에 열이 심해서, 학교에 가지 못했는데, 아침에는 안 그러다, 갑자기 비가 내리니까, 릿쨩한테 우산을 가져다 줘야 할 거라고, 그런데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리츠가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자 그녀도 그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알았는지 전화를 끊었다. 그럼 어디로 간 거람… 연결이 끊기기 전에 혼자 중얼거리는 그 말이 들렸다.
다시 혼자가 되자 저주들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도련님, 도련님. 끈질기게 불러댔다. 하지만 리츠에겐 드물게, 그것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관의 장에서 형의 우산을 꺼내 쓰고 학교로 향했다. 그 전부터 몇 번 들은 적 있었다. 내가 데리러 못 가도 릿쨩은 혼자 학교에 갈 수 있지? 형이니까. 자존심이 상하기 싫어 그렇다고 대답했다.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거짓말을 했는데. 학교까지 이렇게 멀었나. 발밑에서 물웅덩이가 쪼개졌다. 저주도 숨이 찬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리츠는 학교 운동장에 섰다. 오래 뛰어 밭은 숨을 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긴 교사 문 앞에 우산 두 개를 놓고 앉은, 흠뻑 젖은 마오가 보였다.
리츠는 자기 우산도 던져버리고 마오에게 달려갔다. 전화에서 뭐라고 그랬더라, 열이 심하다고 했는데. 비를 맞은 몸은 찼지만 열 때문에 눈이 가물거리는 것 같았다. 팔을 잡자 마오가 천천히 눈앞의 사람을 확인하고 물었다. 릿쨩……
이제 도련님을 버릴 거예요. 도련님을 내칠 거예요. 도련님이 저 작은 태양을 꺼지게 만들었으니까.정말 그럴 지도 몰라. 리츠는 무슨 말도 하지 못하고 마오의 손만 주물렀다. 각오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랬는데,
안 젖었구나, 다행이다. 마오가 웃으며 말했다. 그 짧고 가벼운 말에 저주가 동강 나는 것을 보았다. 리츠를 몰아넣던 저주들이 동요하는 것이 들렸다. 비 맞을까봐 걱정했어, 또 하나가, 우산 빌려줄게, 그렇게 점점 모든 저주가 태양의 말에 분질러졌다.
리츠는 어떻게 할 줄 모르다가 손을 뻗어 지금은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식은 그를 끌어안았다. 너… 아프다면서…… 괜찮아. 내일이면 다 나아서 데리러 갈 테니까. 그렇게 대답하더니 지친 것처럼 리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다.
그리하여 저주와 함께 달려온 어린 흡혈귀는 작은 태양을 업은 채 큰 우산 하나를 쓰고, 단우산 두 개를 들고 온 길을 천천히 되밟아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