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해석이 주관적인 편이고, 아직 스토리를 전부 보지 못해 호칭이나 말투 등 실제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은 창을 닫아주세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는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놓인 물건과 예술은 마치 죽은 것을 전시해두는 것 같았다. 손을 댈 수도 없고, 멈춰버린 시간이 제법 많이 쌓여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은 박탈을 넘어 상실을 느끼게 했다.
얼마간 지나자 그런 곳에 갈 기회도 자신에게는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별로 아쉽거나 후회되지는 않았다. 그러는 대신 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같은 관이 붙어도 도서관은 자유로웠다. 물론 망가뜨려서는 안 되지만 손을 대는 것도, 거기 있는 물건, 그러니까 책들이 제 용도로 쓰일 수 있게 하는 장소였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관棺이라면 도서관은 관館이었다. 그 차이를 떠올리는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어떤 관에 가도 너는 제법 자주 따라왔다. 소꿉친구라는 것은 그래서 좋은 것이라.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내가 손을 댈까 노심초사하다가, 손을 잡고 나와 음료수를 사 주었다. 그 날은 어른들이 찾을 때까지 로비의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음료수를 마셨다. 캔에 든 밀크 티는 별로 맛이 없었다.
도서관에서는 둘이 적당한 시간을 들여 책을 뽑아오고, 적당한 시간 동안 읽었다. 다 읽지 못해도, 둘 다 제법 바빴기 때문에 어느 시간이 되면 돌아가야 했다. 다음에 다시 읽으면 좋았겠지만 매번 다른 책을 잡았다. 80% 정도 읽고 도로 꽂아두는 책이 열 손가락을 넘어가기 시작했을 즈음엔 제목을 전부 외우지도 못했다.
너 역시 도서관을 다른 곳보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조용한 장소이니만큼 성질을 긁는 것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솔직히 너의 이미지로는 잘 어울리는 장소이기도 하고. 여러 이유로 안정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네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학원의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체제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것은 나보다 더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또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역시 나의 일이겠다.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이니 아무래도 죽으면 신경 쓰이지 않을까.
어디에서든 너는 나를 걱정했다. 학생회실에서도, 교실에 있어도, 무엇을 해도, 조금만 조용히 있어도 금방 나를 찾았고, 돌아보고, 걱정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도서관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것이 조금 섭섭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맞은편에서 케이토는 어제 읽다 만 책을 들고 독서에 골몰해 있었다. 에이치는 또 새로 뽑아와, 제목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책을 설렁설렁 넘기다가 손을 들어 케이토가 읽고 있는 책등을 쳤다. 『페스트』. 읽은 적이 있던가?
“케이토.”
“뭐냐, 에이치.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
“조용히 말하고 있잖아.”
“그런 얘기가 아니라,”
버릇처럼 화를 내려고 했는지 뒷말은 급히 삼켜버렸다. 하지만 책을 내려놓아 얼굴이 보였다. 바라던 바는 된 것이다. 에이치는 케이토가 다시 책을 세우기 전에 말했다.
“케이토는 내가 걱정되지 않아?”
도서관에 어울리는 싸늘한 침묵이 답으로 돌아왔다. 역시 이 말은 너무 세지 않았을까. 대답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너는 책을 세웠다. 지금까지 겪어온 것을 무시해온 것은 아니다. 조금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책 너머에서 쉰 것 같은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쭉 그렇게 느껴졌나?”
물론 전혀 그렇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말이 이어졌다.
“물론 그냥 한 말은 아니겠지. 조금 그만 걱정하라고 한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하는 게 낫다. 나였으니 망정이지, 내가 조금만 더 성격이 나빴으면 도서관에서 못 볼 꼴을 보였을 거다.”
“미안해. 그러니까, 도서관에서는 유난히… 걱정하지 않잖아.”
“잡담이 금지인 장소니까,”
“그런 얘기가 아니라,”
“원래 조용한 곳이라, 네가 조용히 있어도 도서관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어. …경우에 따라 미안한 말이지만,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안심할 수 있다.”
책을 덮었다. 얼마 읽지 못했지만 이 대화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흘러간 모양이었다. 너는 금방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고 와서 나를 재촉하듯 보았다.
“가야지.”
케이토가 낮게 말했다. 에이치는 잠시 얼떨떨하게 케이토를 보다가 일어섰다. 손에 든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았다.
“케이토.”
“무슨 일이지.”
“어지러워서 못 일어나겠는데 손 좀 잡아줘.”
또 한 번 소리 지르려는 것을 참고 케이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걸어와 에이치의 창백한 손을 쥐었다. 일어날 수 있도록 잡아당겼다.
“도서관에서는 소리 안 지를 수 있네.”
“원래 그런 곳이니까.”
그 날 일은 제법 길게 기억할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은 역시 모르겠지만, 케이토가 읽은 책의 작가도, 어지럼증 속에서 눈이 먼 것 같은 감각도, 그리고 도서관을 나오고 나서 네가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준 것도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