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면 뭐라도 사랑할 자신이 있었지만, 네가 없는 시간 역시 너의 일부라고 보아야 하는 것인지는 자신을 갖고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네가 없는 시간이니, 너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일까. 그게 아니면, 너로 인해 나뉜 시간이니 역시 너의 일부일까. 어느 쪽으로도 답을 내고 싶지 않았다. 네가 없는 시간 역시 사랑할 자신은 없었고, 그렇다고 그 시간이 너와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얼마나 깊은 영원에 던져지는 것일지. 사랑할 수 없는 수렁을 버틸 수 있을까.
그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생각하려 했다. 결코 영원히 살아주지 못할 것을 아는 내 태양이 저물 때까지, 그래도 그것은 그렇게 짧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100년 남짓. 그렇게 길지도 않지만 생각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일 것이었다. 사랑할지 말지. 그것을 백 년 동안.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 동안은 충분히 사랑하며 살 수 있었으니까. 사랑하는 시간과 오래 곱씹을 수수께끼. 그런 상태까지도 사랑할 수 있었다.
몸을 녹이는 태양과 함께 그 고민을 씹었다. 너 역시 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언제나 네가 먼저 그것을 그만두었다. 눈썹을 내리며 웃는 너를 보면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 같았다.
겨울이 일찍 온 것만이 비극이었다.
해가 짧다더니.
원망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런다고 도로 봄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네가 웃었다. 겨울이 오고서 너는 거의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마른 나무처럼 굳어지는 너를 보는 게 무서워서, 나는 매일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끝을 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평생 알 수 없었다. 없는 끝을 안다는 것은 있었던 적이 없는 시작을 안다는 것과 같을 것이다. 불가능이었다.
나무를 닮아간다는 것은 딱딱하고 차가워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자주 찾아갔다. 나무에 물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너는 다시 웃었다. 보통 이런 나무는 베어버리는걸.
나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벨 것이었다. 가로수로 심은 나무, 정원수로 심은 나무, 그런 목적으로 나무를 두었다면 베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그럴 리가 없잖아.
매일 혼자 춥지 않도록 나는 너를 찾아왔다. 내가 말을 하면 너는 웃었지만, 단풍이 질 즈음부터는 그러지도 않았다. 메마른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왔다. 그래도 너는 웃지 않았다.
리츠.
어느 날엔가 선물을 들고 찾아갔을 때 너는 웬일로 웃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먼저 내가 건네는 선물을 받아들었다. 안즈의 도움을 받아서 고른 담요를 내밀자 구김 없이 웃었다.
리츠.
응, 마 군. 네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오랜만이었기에 나도 웃었다. 마치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두근거렸다. 연애를 하겠다고 시작한 적은 없었지만.
너는 어깨 위에 담요를 두르고 팔을 내밀었다. 뭔가 주려는 건가 싶어 손을 손바닥으로 감싸 받았지만 쥔 주먹을 펴지는 않았다. 하하하, 리츠, 뭐 하는 거야. 네가 나를 쓰다듬었다. 손을 놓지 않고 있으려니 한 번 더 웃기도 했다.
할 말이 있어, 리츠.
그 때, 그 웃음이 마냥 기뻐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나는 손을 놓을 수 없었다. 태양이라기엔 보잘것없는 온기가 쥐여져 있었다.
나는 영원히 살 수 없으니까.
같이 고민하던 게 있잖아. 내가 없어지면 너는 그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앞당겨져버려서 길게 생각할 수 없지.
그러니까 줄게. 부디 받아줘.
내 피, 목숨, 온도, 어쩌면 존재했을 지도 모르는 내 미래를, 내 인생 전부를.
그 목소리는 유독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또렷한 목소리로 한 마지막 말이었기 때문일까. 그 후로 너는 일어나지 못해서, 내가 다시 그 방을 찾아갈 일은 없었다.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은 아무래도 직감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내가 아예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네 말대로, 네 모든 것을 삼켜버렸으니까.
팔에 이를 박아 넣고 나서 들은 끊어질 듯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기뻐서 견딜 수 없는 것 같기도 했던, 가느다란 목소리. 아, 이제 네 안에 있을 수 있어. 네가 기뻐하는 것, 슬퍼하는 것, 전부 나도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울고 싶었다. 그런데도 네 말을 들어서는 울 수가 없었다. 지금 내 모든 게, 내 숨이 너에게로 옮겨가…… 리츠. 마치 키스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키스를 하는데 울면 꼴사나울 거 아냐.
그래서 울지 않았다.
너는 그렇게 나와 함께 있겠다고 했지만. 나로서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말을 걸어도 대답해주지 않았고, 거울에 나 대신 네가 비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네가 그렇게 말해서, 그리고 그 때 정말로 한순간, 온 몸이 타오를 정도로 따뜻해진 것 같아서. 차갑기만 한 내 안에 정말로 네가 들어온 것 같기만 해서, 아직은 이것 역시 너와 함께 사랑할 수 있었다.
그건 네가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네가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게 해 주는 거겠지.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마 군.
다만, 이제 다시 식은 내 피를 생각하면 한 가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따뜻하던 네가, 타오르는 태양인 네가, 내 추악한 피의 바다에 잠겨 꺼지고 만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