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영어를 잘 못해 호칭이나 말투, 캐릭터 해석 등에 차이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민감하신 분은 창을 닫아주세요.
자신이 가진 것은 아무리해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자만이 거기에서 비롯하며, 자책 역시 그것에서 기인한다. 아무리 남들이 뛰어나다 평가하는 것을 가졌어도 그것을 경멸할 수도 있고,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보잘것없는 재주를 가지고도 자신을 떠받들 수도 있는 것이다. 전자의 이유로 많은 천재들이 제 재능을 땅에 묻어버리는 일도 빈번히 있었다.
누군가는 바라마지 않을 힘이겠지만,
1.
왜 싫어하게 되었느냐고 하면 말할 수 없다. 사람의 일은 반드시 논리적으로 깔끔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가 묻더라도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이유가 어디 있어! 싫으니까 싫은 거지!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하면 다들 납득하고 넘어간다. 아무도 그 본질을 귀찮게 파헤치려 하지는 않는 것이다.
모두가 바쁜 곳이고, 당연히 그런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유쾌의 뒷면은 파헤치려 하지 않는 것이다. 포장한 것은 내용물을 감당할 자신이 없거든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포장을 잡아 뜯고 나면 그 내부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되니까. 나이츠의 모두는 영리했고, 프로듀서를 맡은 전학생도 어리석지 않아 그 이상은 다가오지 않았다.
저 물음은 한동안 어느 상황과 마주치기만 하면 자동응답처럼 튀어나왔다. 보컬 레슨이 있을 때마다. 악보를 들고 전학생의 지휘에 맞춰 나이츠가 각자 노래할 때마다. 악보의 뒷면에 오선보를 긋고 음표를 그려 넣는 것을 전학생이 지적할 때마다.
“나는 노래하는 게 싫어! 내 목소리는 별로잖아. 내 나이츠들이 충분히 잘 해주고 있으니 내가 굳이 낄 필요도… 아~ 그것보다, 지금 인스피레이션이 떠오르는 중이니까 방해하지 말고!”
2.
그래도 정작 필요한 자리에서 노래할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주 못마땅해 하는 것에 비해 그의 노래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못나지 않았고, 오히려 잘 하는 축에 들었다.
그런데도 필요하지 않으면 노래는 하지 않는다.
그 자신의 노랫소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의 노랫소리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 사람의 청자는 그의 목소리를 좋아했고, 그 목소리가 부른 노래도 무척 좋아했다. 그랬기 때문에 아주 드문 경우에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섭섭한 것이었다.
3.
객관적으로 봤을 때 노래를 못하는 것도, 목소리가 심각하게 망가진 것도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런 객관 역시 천성적으로 가진 재능 중 하나였다.
그래도 싫은 것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래 좋아하던 것에서 모든 미련을 끊고 한순간에 미워할 수 없듯, 오래 미워하던 것을 어느 날 모두 털어놓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없었다.
숙명처럼 미워한 것이다. 차라리 목에서 떼어놓고 싶은, 그런데도 의존하고 있는 목소리라는 것을.
아마 평생이 가도 자부심을 가질 일은 없을 것이다. 조금 더 객관적입 입장으로 돌아서는 일이 있어도, 악보를 그리고 안무를 지휘하는 팔이 부러진다면 무척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지만 목소리는 그렇게 비참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마음이 바뀌는 일은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 한은 없을 것이다. 그것에 분명한 자신이 있었다.
4.
음악실에는 그밖에 없었다. 들어가자 그와 나 두 사람뿐이었다. 그는 그답게 사람이 들어오건 말건 고개 한번 돌려보는 것 말고는 하지 않았다. 예처럼 활짝 웃으면서도 그 웃음으로 사람을 향하지는 않았다.
“Leader."
“지금 바쁘다니까! 급한 거 아니면 이따… 아, 스오! 마침 너구나! 이리 가까이 와 앉아봐!”
다가가 앉자 그는 악보 더미를 뒤적이다가 몇 장인가 집어 넘겼다. 무엇인지 살펴보기도 전에 그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마침 쓰고 있던 게 딱 네 파트였단 말이지. 혹시 이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고치게 여기서 불러보는 게 어때! 물론 나는 천재니까 별로 고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말이야. 퇴고까지 하는 천재라고 하면 천재 중에서도 대단하지!”
“Leader, 저는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please, 다른 말은 하지 말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입을 다물었지만 오래 보고 있지는 않았다. 말을 하기 위해 잠시 헛기침을 하는 사이에 악보들 틈으로 고개를 돌려, 종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로 침묵을 묻었다.
“저는 leader의, 그 voice가 정말 좋습니다.”
펜이 멈출 줄은 몰랐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악보 한 장에, 마치 종이를 찢어버릴 것처럼 고개를 묻었다.
“그, 노래를 할 때나, Knights를 부를 때나, leader의 voice는 분명히 우리들이 가야 할 position에서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게, leader의 목소리라서,”
그가 도로 펜을 잡았다. 이게 얼마나 무게를 가질지는 알 수 없었다. 종이 위에 사각사각 펜이 긋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종이의 비명. 그것 말고는,
∞.
“저는 leader가, 자신의 voice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무척 좋지 않은 accident일지도 모르지만…….”
떨림을 죽이는 고백이 하나 있었다.
“당신의 Knight인 제가 그 목소리를 좋아할 테니, 제가 좋아하는 당신의 목소리를……”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세요.”
하고 털어놓았다.
5.
다시 좋아하기로 해봤어. 어쩐 일로 보컬 레슨을 빠지지 않느냐고 묻자 대답할 말도 그게 전부였다. 며칠 지나자 그 질문도 사그라졌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당장, 마땅히 설명하지도 못하고 좋아하게 된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고백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려 노력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덜 부끄러운 일이다.